이찬수 목사님

이찬수 목사님- 감격으로 행하는 호의와 환대(창세기 18장 1-8절)

Leadprayer 2024. 4. 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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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참 굉장히 독특한 그런 포인트를 하나 발견할 수가 있는데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주십니다.

그런데 굉장히 특이한 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은 감추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게 창세기 18장 1절 2절 방금 읽은 본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마물의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본 적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 있는지라

 

이 사람 셋에 대한 분석이 여러 가지로 많지만 하나님과 두 천사라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본 적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 있는지라

그러니까 아브라함 편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이게 이제 3절에도 나오는데요.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어 사우면 원하건데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이렇게 읽으면 아브라함이 꼭 하나님을 알아본 것처럼 그렇게 느끼게 번역을 해놨지만 세 번역으로 한번 다시 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두 천사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그냥 뜨거운 한낮에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한 나그네 손님으로 인식을 한 겁니다.

왜 당신의 모습을 감추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성경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서 추측하는 거지만 딱 추측해보면은 이게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어떤 의도 테스트를 하시기 위한 게 아닐까

이제 아브라함은 한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으로 17장 말씀이 마무리되고,

그리고는 이제 18장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감추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그렇다면은 하나님의 시험의 의도와 목적이 뭔지를 좀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중수 목사님이 쓰신 책에 보니까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17장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더라 이런 말씀으로 끝을 맺었고 창세기 18장은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예시한 것이다. 이 흐름을 아시겠죠. 그러면서 이제 정리하기를 마음의 한례를 받은 자는 제일 먼저 대인관계에서 나타난다 왜 하나님이 지금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느냐 왜냐 하니까 이 마음의 한례를 받은 자는 제일 먼저 그 변화가 대인 관계에서 드러나는데 이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걸 지금 하나님이 테스트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미국 사람들의 약자에 대한 이 친절함은 이게 기독교 문화라는 겁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는 가장 먼저 대인관계에서 그것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최태영 교수님이 쓴 책에 보니까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이런 설명을 하는 글을 제가 읽었습니다.

인간의 성숙이란 자기 중심의 삶에서 타자 중심의 삶으로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보고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학자는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의 분별을 거기에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고등종교는 그 지향하는 바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 기독교가 지향하는 인생은 참된 신앙인 기독교가 지향하는 인생은 남을 위하고 세상을 위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남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자기를 위한 삶에서 남을 위한 삶으로 지향점이 바뀌어 갔습니다.

18장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감추시고 인간의 모습 그것도 지금 한낮 더운 그 지역 날씨에 지친 나그네의 모습으로 임하셨다는 거

하나님이 뭘 테스트하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얘가 제대로 은혜 받았나 그 점검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테스트를 하셔야만 되는 궁극적인 뚜렷한 이유가 뭡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복의 통로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합니까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바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데 있는 그 사람만이 복의 통로가 되는 거 아닙니까 뭐라도 하나 가지면 자기 중심으로 집착해서 끌어모으기만 하고

조금도 흘려보내지 않는 그 사람이 어떻게 복의 통로가 되겠냐고요

이런 의도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테스트 하시는데 뭐 점수로 매기자면요.

이 테스트에 아브라함은 10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현해냈습니다.

너무나 극진하게 더위로 지친 그 새 나그네를 얼마나 잘 섬기는지 모릅니다.

그게 오늘 본문 18장 2절 하반절부터 한번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그가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어 싸우면 워낙은 데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그리고 5절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아파트에서 이런 거 못해도요 여러분 혹시 단독 주택 계시는 분

여러분 앞을 지나가는 어떤 나그네 보고 당신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그런 환대를 베푸는 게

이게 그리스도인인 것 같아요.

그 다음 6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서하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려 하고

마지막 8절 아브라함이 엉긴 젓과 우유와 이 치즈를 가지고 요리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엉긴 젓과 우유와 하인이 만든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사실은요 원래 이 제목을 아브라함의 오지랖 이렇게 잡아갔습니다.

처음에 그리고 내가 오지랖을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까 부정적인 데 쓰더라고요

제가 아브라함의 건강한 오지랖 별 제목을 다 하다가 오지랍이라는 표현을 빼기로 했는데요. 지금도 아쉬워요. 이거 완전 오지랖 아닙니까 이게 지나가는 날은 애한테 지금 어마어마하게 지금 환대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이거든요. 근데 제가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는 게 뭐냐 하나님이 지금 아브라함을 테스트하러 오셨는데 그래서 이제 당신을 감추시고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제가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 그 테스트의 범위가요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겁니다. 17장과 같은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았으면요. 이건 고난도에 이게 평상시에 아무도 할 수 없는 그런 테스트를 하셔야 될 것 같은데 그냥 지나가는 나은의 문제를 가지고 테스트를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은혜 받았으면 삶이 달라져야 되는데 어떻게 달라지느냐 평범한 일상이 달라지는 거예요.

성경도 이런 태도를 많이 강조합니다.

신명기 10장 18절 보십시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아주 평범한 명령 아닙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명령 아닙니까

또 마태복음 10장 42절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굉장히 평범한 행위 아닙니까 누가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 못 떠 주느냐고요

근데 하나님은 여기에 굉장히 초점을 두고 계셔가지고요 그 사람에게 상을 베푸시겠다는 겁니다.

저는 참 우리 하나님이 웅장하시고 광대하시고 스케일이 크시고 그런 크신 하나님으로서도 너무 감동이 되는데요.

아주 일상에서 삶의 변화라는 건 그 작은 약속 지키는 거 하나부터 우리 일상 속에서 이런 맥락으로 저는 디모데전서 3장 2절을 굉장히 심각하게 읽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여기 나오는 감독은 오늘날로 치면 저 같은 목사나 장로들을 지칭하는 표현 아닙니까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자라며 제가 충격이 되는 게 뭐냐 하면 오늘날 저 같은 목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그러면 다 설교라 그러잖아요. 가르치기를 잘해야 된다 교회 선택에서 이 설교 잘하는 게 참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알고 있는데 지금 디모데전서 3장 2절에 우선순위에 보니까 가르치기를 잘하며 맨 꼴찌에 나와요 3장 2절 안에서는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게 바로 그 앞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이게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선다는 겁니다. 그 교회 목사가 얼마나 설교 잘하느냐 이제 이 기준으로 보시면 안 되고요 그 목사가 참 아무 일 같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도 늘 마음을 잘 쓰느냐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막 변화 받고 막 내 한몸 주를 위하여 불사르고 막 그냥 막 해외 선교지로 달려나가고

이런 엄청난 결단도 너무나 소중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아브라함에게 왜 하나님이 나그네로 모습으로 다가가셨겠냐고요 오늘 여러분 은혜 누리고 계십니까

여러분 신앙이 작년보다 성장하셨습니까 여러분 회사에서 여러분 가정에서 여러분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 부드러워지셨나요.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참 메마름이요 환대를 베풀 줄도 모르고 베푸는 환대를 받을 줄도 몰라요

예수 믿는 여러분 제발 여러분 이런 공공장소 지나갈 때 문 확 열어가지고

그 뒷사람이 그냥 부딪혀가지고 다치게 만들지 말고 좀 문 열고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그 사람이 또 저쪽 문 열고 가실 거긴 하겠지만

은혜 받은 사람의 태도는 그런 어마어마한 막 그런 거 아닙니다.

삶 속에서 작은 친절을 베풀고 그래서 낯선 사람을 환대하라

그는 어쩌면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이런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대한다고 할 때

우리 안의 불친절은 많이 사라지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하나님이 이 테스트에 통과를 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럼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죠.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창세기 17장은요 자격 상실의 상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이라는 그 몸종 그 첩을 통해가지고 자식을 낳는 죄를 저지른 거잖아요.

하나님을 불신한 죄 아닙니까 그리고는 13년 동안이나 그 사실에 대하여 깨닫지도 못하면서 허송세월했던 게 아브라함이고요

그가 하나님이 원하셨던 아들 이삭을 통한 그 역사를 거절했기 때문에 못 견뎠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 그 계약이 파기된 거 아닙니까

이렇게 자격 상실인 상태에 빠진 아브라함이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창세기 17장에서 자격을 잃어버린 자기를 향하여 얼마나 상상을 초월한 호의를 베풀어주시잖아요.

여러분 창세기 17장 4절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호의를 또 이렇게 베풀어주십니다.

4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무슨 뜻입니까 비록 니가 나와의 약속을 깨뜨리고

비록 니가 이 언약을 파괴한 것처럼 돼 보여도 이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게 얼마나 큰 호위입니까

6절 내가 너를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17장에서 이런 하나님의 호위 환대가 계속 이루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어떤 감격이 있었습니까

이 자격 없는 나 내가 파괴해 버린 나 13년을 허송해 버린 나 같은 것을 하나님께서 상상을 초월하는 호의로 다가와 주시고 상상을 초월하는 환대를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의 뜨거운 감격 이 17장에서의 감격이 18장에서 제가 제목을 아브라함의 오지랖이라고 적을 정도로 과도하게 모르는 나그네에게 호의를 베푸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게 제가 깨달은 말씀이에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여러분이 17장에서 아브라함이 누렸던 그 자기를 환대해 주시는 자격 없는 자격을 상실해 버린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배신해 버린 첩을 통해서 자식을 낳아 13년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자격을 잃어버린 자기를 말로 나 없이 환대해 주시는 그 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의 감격이 18장에서 아브라함의 오지랖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 이 환대와 관련해서 두 가지 사실을 나누고 싶은데요.

첫째로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먼저 그 하나님의 환대를 누리자는 겁니다.

아브라함처럼 레위기 19장 34절입니다.

새번역으로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여기 보면은 하나님이 나그네들을 잘 섬기고 환대할 것을 주님이 명하시는데요.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토를 다는 뒷부분 한번 보세요.

토를 다시는데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그 다음에 내가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 두 명제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나은 애들을 잘 섬기고 니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시면서 첫 번째 말씀이 니도 그런 나은애였다는 말씀을 주시고 그다음에 주시는 말씀이

니가 그렇게 어려운 나그네 된 삶을 살 때에 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환대하여

너희들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거 아니냐 그 논리의 말씀이세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아시지만 다윗은 늘 쫓기는 신세의 삶을 살았지 않습니까

집요하게 죽이려고 죽이려고 죽어가는 원수 사울 앞에서도

다윗은 끝까지 위축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어디서 공급받았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것을 시편 23편 5절에서 찾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식탁 아닙니까 식탁 여러분 그 집요하게 죽이려고 달려드는

권력자 앞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냐고요

그 원수의 목전에서 식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의 호위 하나님의 은혜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받았다

제가 참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면서 제가 경험하는 게 개척하고 지난 20년 동안 하나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환대예요.

환대 새벽마다 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예레미아 애가 3장 22절

여호와의 인자와 극률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도이다.

특별히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시니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십자가로 십자가를 통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환대를 많이 누리시면요. 제가 참 자존감이 좀 낮은가 봐요

두 번째가 뭐냐 환대와 관련해서

여러분 하나님께 받은 환대를 대 갚으셔야 돼요 받은 하나님의 환대 되돌려주셔야 됩니다.

어떻게 되돌리느냐 마태복음 25장 35절에 예수님이 그렇게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줄일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랬더니 그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이렇게 대접했습니까 그랬더니

주님의 유명한 대답 사십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누구의 한 것이라고요 주님께 한 것이니라

17장에서 아브라함이 그 놀라운 하나님의 환대를 받았는데 하나님이 당신을 감추시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오신 의도가 이 말씀이에요.

맨날 은혜를 공급받는데 어떻게 중단하겠냐고요

하나님의 은혜대 환대 많이 누리세요.

창세기 17장에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거기만 머물러 계시지 말고

18장으로 건너오셔서 여러분 아까 그 어느 작가가 말한 것처럼 내 주변에 내가 도와야 될 어떤 작은 한 사람

그 하나님의 변장하고 찾아오신 천사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상징적으로 말씀드려서 결론을 저는 오늘 이 찬양으로 결론을 맺기 원합니다.

사랑의 종소리라는 찬양인데요. 주께 두 손 모아 비난이 크신 은총 베푸사 밝아오는 이 아침을 환히 비춰주소서 그다음 보세요.

오주 우리 모든 허물을 보혈의 피로 씻기어 하나님 사랑 안에서 행복을 갖게 하소서

여러분들이 많이 누리셔야 돼요 자격을 잃어버린 아브라함을 탓하지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오늘 저를 여기 세워주시는 원동력이 됐고요

그 뜨거운 은혜로 서로 믿음 안에서 서로 소망 가운데 서로 참아주면서 서로 감싸주면서

손 잡고 주님께로 가는 그 길 남으셔도 가셔도 집 앞에 동네 교회로 가셔도

아무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환대

이제 저도 저도 되갚으면서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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