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 목사님

유기성 목사님-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 자가 받는 복(수15:1-63)

Leadprayer 2024. 5. 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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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호수아 15장 말씀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을 배분하는데 가장 먼저 유다지파에게 배분되는 땅의 기록이다.

유다지파가 받은 땅은 가나안 땅의 가장 가운데 있고, 가장 많은 성읍이 있는 지역을 배분 받았다. 그 말은 유다 지파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지파의 장자가 받을 분깃을 받았다라는 의미이다.

야곱이 12아들을 마지막 그가 세상 떠나기전 축복할 때, 12아들의 장자 축복을 루우벤에게 주지 아니하고 요셉과 유다지파에게 준다. 요셉지파에게는 장자에게 명분을 주고, 유다지파에게는 실제적인 이 장자의 통치권을 준다.

본문

오늘 땅 분배도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유다지파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을 배출하는 지파가 된다. 다윗과 솔로몬, 40여명의 왕이 유다지파에서 나온다. 유다지파가 받은 땅은 왕의 도읍지가 된다. 헤브론, 예루살렘, 베들레헴 등등 예수님께서 유다지파에게서 나셨다. 지금도 이스라엘 국민을 유대인이라 말한다. 참 놀라운 복을 유다지파가 받았다.

어떻게 유다지파가 이 복을 받았을까? 그 이유가 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아들이지만 그는 실제적으로 장자의 행동을 하고 살았다.

그가 장자답게 살았기 때문에 장자가 받을 복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다 굶어 죽게 되었을 때에 그 때 야곱의 아들들이 그래도 양식이 있는 애굽에 가서 요셉이 총리로 있는 지 모르고 식량을 얻으려 떠나게 되는데 반드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야곱이 요셉도 죽었는데 베냐민 마저도 죽일 수 없다고 절대로 베냐민을 동행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 나선 사람이 유다이다.

유다가 베냐민을 반드시 책임지겠고 만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그 생명을 대신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겨우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을 가게 된다.

유다는 가족공동체를 위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도 내어 놓을 각오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베냐민이 도둑 누명을 쓰고 애굽에 붙잡히게 되었을 때, 유다가 나선다.

자기가 대신 종이 되고 자기가 대신 감옥에 가겠다고, 그렇게 가족을 살리고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이 유다이다.

유다 그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일을,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쪽을 택한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그 요셉을 살려주기 위해서 차라리 우리가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이 요셉을 파는게 낫지 않겠느냐? 그래서 요셉을 죽음에서 건져내어 준 사람. 유다이다.

성경에 유다에게는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굉장히 길게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이다. 그 유다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큰 아들과 다말이 결혼하여 자식이 없이 큰 아들이 죽는다. 그 때 당시 풍습에 따라서 둘째 아들에게 며느리 다말을 결혼 시켰는데 둘째 아들도 자식이 없이 일찍 죽는다. 유다가 마음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셋째 아들과 며느리 다말과 결혼시키지 않는다. 그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인 유다를 속여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아기를 임신하게 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다가 대놓아 한다. 가늠한 것이라고 그 며느리 다말을 죽이려 한다. 그 때 이 며느리 다말이 이 아이의 실제적인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유다임을 징표로 알린다. 그 때 유다가 그것을 보고 왜 며느리 다말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알게 되고, 그리고 사실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때 다말을 죽게 내버려 뒀다면 자기의 부끄러운 일은 감추어졌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가 나보다 오르니라 하면서 며느리 다말을 살려준다. 그때 며느리 다말이 쌍둥이를 낳게 되는데 그 후손에서 다윗이 나오게 된다.

유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일, 공동체를 위한 일, 자기를 희생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 후에 유다지파는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 나가면 언제나 맨 앞에 선두에 선다. 그 당시 전쟁은 맨 앞에 서는 사람이 희생이 가장 크다. 그래서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나올 상황이었는데도 나중에 인구 계수를 해 보면 항상 유다 지파가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에세 복을 주신 것이다.

오늘 여호수아 15장에도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는 기사가 나오지만, 갈렙은 가나안땅을 단순히 복이라는 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갈렙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복이기 이전에 사명지 였다. 가장 힘들고 어렵고 아무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헤브론 산지를 네게 달라고 자원함으로 이스라엘 지파들이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려고 서로 신경쓰고 그렇게 예민한 상황을 극복하게 한 사람이다. 그 갈렙이 바로 유다지파 사람이었고 바로 유다지파가 어떤 지파인지 보여주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다지파에게 그렇게 복을 주신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동족 공동체를 위해서 살았던 그 자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지를 바로 여호수아 15장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유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죽는 예수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고전5장 15절에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고 이제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필요가 없다. 주님이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계신데, 내가 나를 위해서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오직 내 생명되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살 때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신다.

유다가 그렇게 살았다.

도대체 나는 죽고 예수로 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있는가? 증인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다 증인이지만, 예수 믿는 다는 것은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서보다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이웃을 높이기 위해서 산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일을 정할 때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산다. 그것은 어떤 것이 더 희생하는 일인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죽고 예수님으로부터 살게 된 것은 예수님과 같이 살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하신 것, 그리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려고 하신다.

우리는 다 복을 받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 지는 정말 모르는 것 같다.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 부담스러운 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진짜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 믿게 된다면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을 사는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시겠는가? 진짜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사람인 것이다.

한국 교회에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복을 주시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국 교회의 초창기 때,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날 때, 복음이 전해 진지 30여년도 되지 않는 신흥종교였다. 그때 당시 기독교인 수는 15만정도로 헤아리는, 조선 인구의 1%도 안되는 그런 작은 종교였다. 그런데 3.1운동을 민족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실제로 그 일을 수행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구심력이 되었다. 전국에 있는 예배당은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때 당시 3.1운동에 교회가 앞장서는 일로 인해서 가장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그로 인해 붙들려 감옥에 들어간 사람의 25%가 기독교인이었고, 여성들로 따지면 80%가 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었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34인 중에 16인 기독교인이었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민족의 고난에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일인데도 그때 당시 교회는 그 일을 했다.

당시에 평양지방의 감사였던 무어 선교사님의 기록에 의하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지방회의를 개최하려고 할 때, 조선 목사 중 1인이 말하기를 금년 지방회는 감옥에서 개회하면 좋겠다. 이렇게 말한 까닭이 목사가 모두 28인인데, 그중 14인이 감옥에 갇히고, 4인은 강제로 사직하고 남은이는 불과 10인라. 집사 포함 10인 중 8인은 감옥에 있으니, 2인만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고통 때, 교회는 그 십자기를 졌다. 그래서 그 일을 보고 기독교에 대해서 의구심이 많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다. 1920-1930년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기독교는 급성장을 하게 된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과거지사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도 우리 민족에게는 한국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평화로운 통일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통일을 어느 누가 중심이 되어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나라를 생각하고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그런 사명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어려운 처지에서 우리의 먹고 사는 것만 놓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그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시겠는가?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결론

오늘 유다지파에 대해서 읽고 예수님의 특징으로 사는 성도의 삶이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믿음이 우리가 진짜 복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느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일제 강점기때 많은 지식인들, 많은 지도자들이 일제 말에 친일 생각을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겠나? 바로 믿음이었다. 우리 민족은 독립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일본 지배아래 살아야 한다. 그들의 세계 정세를 보고 그들이 판단력으로 당시 상황을 보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결론이 들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나 우리 자손들 그저 잘 사는 길로 가야지. 그럴려면 친일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믿음 때문에 그들은 천추의 한을 남기는 처지와 행동을 한 것이다. 지금도 그 가문에 친일생각을 했던 것만 나타나면 그 후손들이 어쩔 줄 모르는 지경이 되지 않는가?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진짜 믿으면, 어떤 어려운 처지, 어떤 위기의 상황에도 우리 자신, 우리 후손도 잘 되는 길을 가게 된다. 믿음이 결정한다.

하나님을 향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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