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수 목사님

김병삼 목사님 -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사도행전 1:12-15, 2:1-4)

Leadprayer 2024. 2. 2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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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람은 오백여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린 사람은 백 이십여명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갔을까요? (스킷 드라마)

1.자기 할일이 바빠서

2.기도를 깊이 할 줄 몰라서

3.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기다림.

우리는 열흘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지만, 그들은 기약없는 기다림의 공포로 인해 그들은 포기한 것.

 

4. 잡혀갈 것을 염려해서

5. 부양할 가족들을 생각해서

6. 오시지 않을 것에 대한 염려와 불안함 때문에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의 상부도시,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있던 집

대제사장보다 훨씬 좋은 집에 살고 있었던 고급스러운 집.

거기에 있는 다락방은 우리가 아는 좁고 밀폐된 곳이 아니라, 2층 집을 의미

 

모두에게 오픈되고 공개된 곳이 다락방.

그곳에서 모인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

며칠 전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기 때문에 정말 믿음이 필요한 일.

숨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놓고 기도하고 있던 자들,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

 

 

Q. 어떻게 120명의 사람들은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Q. 이 기다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기다림은 우리의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는 얼마나 기다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산상수훈’이라는 책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가장 위대한 말씀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험을 하게 하실 때, 놓치지말고 잡으라.

 

어쩌면 기다리라고 하는 말씀은 신앙인에게 모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다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누가복음 24:48-49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고, 누가복음에서 사도행전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의 최고봉이라는 책에, 주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에 ‘떠나라 기다리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떠나라는 메시지에는 ‘내가 거기서 역사할거야’ 라는 약속이 있고, 기다리라는 메시지에는 ‘여기서 역사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역사는 늘 존재합니다.

 

이 성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그 성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 예루살렘성 위에 있는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다리라는 의미에는 두 가지 공포가 있습니다.

하나는 장소적인 공포, 또 다른 하나는 시간적인 공포입니다.

제일 힘든게 기약없는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기다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500명이라함은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사도바울의 편지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일시에 오백명에게 보이셨는데, 그 중에 120명만 말씀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380명에 속할 것인가? 120명에 속할 것인가?

500명이 다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었으나, 공포라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사람을 떠나가게 합니다.

 

이 380명이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

40일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기다리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공포와 차가워진 신앙 때문에 떠나간 것.

그러면 120명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도행전 1:14-15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예수님께서 이 성에 머물라 말씀하셨는데, 우리에게 물어봐야 할 것은 우리들의 기도의 자리는 어디인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사명과 직분의 자리가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라고 하는 부분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들은 끝까지 이 길을 가기로 뜻을 모으고’

120명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길을 끝까지 가기로 뜻을 모았다라는 것입니다.

 

380명은 어디가고, 120명만 남은 상황입니다.

120명 밖에 안남았다고 성경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15절을 보면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코 적은 수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2절을 보면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감람원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곳입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다가 승천하신 것을 본 사람들은 서운한 마음과 이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쉐어링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거기서 내려와서 안식일을 지키기에 알맞은 곳으로 갔는데,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냐면 우리가 함께 모여서 여기서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 뜻을 모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그 마음을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동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 교회의 시작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기로 약속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몇 사람이 모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시작은 2천년 밖에 안되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2천년 전부터 계속 되어 온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고,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교회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주님의 약속이 존재하는가. 그 마음이 존재하는가.

 

설교자들도 주님의 약속을 전하는자가 되어야 하고, 그런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약속이 없다면, 그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든 사라져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참된 공동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기다림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적극적인 기다림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쉽고 빠르게 포기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집중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묵묵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

 

오늘 120명의 사람들을 통해 해답을 살펴보니, 안식일을 위해 감람원에서 내려오는데,

주님을 기억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에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예배를 중요시하고, 예배공동체로 서는 것!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건물에서 모이는 형식적인 모임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사모하며 뜻을 모아 모이는 공동체! 그런 하나님의 소망이 가득한 공동체!

 

진짜 예배가 회복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도행전 2장 1-3절까지는 성령이 역사하는 장면을, 4절은 성령이 임하셨을때의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 ‘마치’를 주목하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처럼!

성령이 강하게 임재할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처럼 임했다고 현상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임할지는 우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령이 임할 때, 4절을 보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왜 번거롭게, 다른 말로 기도하게 하셨을까.

마음을 모아서 모였는데, 왜 다른 말을 하게 하셨을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진정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교회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임재함 가운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기로 결심하셨을 때,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모세를 부르셔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고,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신 것!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말하게 하심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급하고 강한 바람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기독교는 제자들을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약하고 겁많고 쓸모없던 자들이 하나님의 강한 용사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변이 입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진정한 기독교 중

 

하나님은 인간의 혼돈 가운데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인간이 일하도록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급격하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또다른 언어로 번역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고 역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역사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코로나를 지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지킨다, 예배를 지킨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각각 다른 언어로 말씀하게 하셨던 성령의 역사가 이 세대 가운데에도 나타날 수 있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하시고, 건물에 갇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세상을 나가는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부활을 목격했던 380명이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게 하심을 따라 일하는 것.

기다림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가장 적극적인 신앙의 행위이자 믿음의 고백입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며 기도하며 인내할 때, 성령의 임재를 기다릴 때

꿈꾸고 깨어나는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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