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프랭클 박사
2차 대전 당시 나치 포로수용소에 끌려가서 죽음을 방불케 하는 그런 고난을 경험하는 절망에 빠졌는데 그 와중에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있다.
자극과 반응과 공간
자극이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
반응이란 갑자기 일어난 일들에 대한 반응( 사고가 날 뻔할 때 경적을 울리는 일, 막 욕을 하는 것, 보복운전)
공간이란 자극과 반응 사이에 바로 행동하지 않고 생각하는 시간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도, 신앙생활에도 이 원리가 필요하다
복잡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하나님께 원망할 일도, 마음상한 일도 많은데, 이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자극과 반응이다. (이찬수목사님은 이를 위해 일찍 자버린다고 함)
창세기 17장 15절 16절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내 아내의 사례는 이름을 사례를 하지 말고 살아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내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지금 아브라함 입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건강한 자극을 받은 거예요. 그렇게 꿈에도 소원하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아 낙심해 있고 절망해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 이게 건강한 자극을 받은 겁니다.
그러면 픽트 프링클 박사의 조언을 아브라함이 알았다면 그 자극 다음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데 아브라함은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직격탄을 날려요. 불신을 가지고 뭐라고 말하는가 하니까 바로 그다음 17절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면 이 비웃는 거거든요.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루되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람은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오 아브라함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까 왜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마련하고 이 의미가 뭔지를 생각하고 묵상하고 그런 시간을 다 생략해 버리고 바로 비웃으면서 이런 일 안 일어납니다. 이렇게 이렇게 딱 그렇게 잘라버리는 겁니까
간단해요. 아브라함이 확신하고 있는 생각이 있거든요. 이런 일 안 일어난다 내 아내는 이제 이제 경수도 끊어졌고 나도 이제 나이가 이제 99세나 됐는데 이런 일 안 일어난다 확신을 하니까 바로 그냥 생각이고 뭐고 이거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못을 박아버리는 거거든요.
만약에 아브라함이 지금 저를 상대해서 이찬수 목사라는 어떤 인간을 상대해서 대화하는 거라면 아브라함 생각이 맞아요. 그러나 지금 아브라함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지금 상대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범하고 있는 실수가 뭡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하나님을 자기 수준에 놓고 자기 생각에다가 하나님을 놓고 바로 자기 생각을 터뜨리니까 이런 어리석은 일을 행할 수밖에 없다.
당신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버리고 당신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발견하라 그다음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참 하나님을 알아야 인생의 목적도 알 수 있다. 이게 지금 딱 아브라함보가 하는 얘기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자기 생각의 틀에다 가두어 버리고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도 못하는 일을 왜 이런 선언을 하시냐는 식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던진 게 본문의 아브라함이거든요. 이게 이런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을 제한시키는 인식이 아브라함의 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십시오 바로 그다음 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엄청 모독된 말 아닙니까 지금 하나님은 엄청난 스케일을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거 아닙니까 여러분 잘 아시는 창세기 12장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 당대에도 이 큰 꿈을 하나님이 주셔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난주 우리가 나누어 보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17장 7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내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내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당대뿐이 아니라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해서 이루게 되실 그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이 품고서 아브라함을 지금 대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이렇게 작은 자기 생각의 통 안에 가두어 버리니까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이나 좀 잘해주시지 이게 오늘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여러분 딱 이게 오늘 우리의 모습 아니냐고요 여러분 이런 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당신 인생의 크기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당신 인생의 크기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을 내가 어떤 하나님으로 인식하느냐가 그게 우리 인생을 결정한다
아브라함처럼 눈에 보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님 하시고 내가 못하는 일 하나님도 못하시고 그래서 그저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이나 좀 잘해 주시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거는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그 한계가 무려 십삼년 동안 방황하게 만드는 나쁜 도구가 됐다는 거예요. 저는요 정말 이 말씀이 한국 교회 성도님들에게 구현되기를 바랍니다. 당신 인생의 크기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님의 그 크기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자각하는 오늘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다시 만났기 때문에 13년간의 그 방황을 끝내고 허송 세월을 내고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늘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잡은 게 뭐냐 하면은 이 아브라함의 변화 13년 동안 그 엉뚱한 곳에서 배회하고 방황하고 13년 동안 그야말로 허송 세월을 보냈던 아브라함을 단번에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는데요. 그 아브라함 변화의 동력을 저는 두 가지로 발견을 해서 나누기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능했느냐 첫째로요 아브라함 변화에는 교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교정해 주심의 은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7절 18절 다시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출산하려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좁은 생각으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바로 그다음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내 안에 사라가 내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제가 방송실에다가 유난히 아니다를 좀 크게 강조해달라 그랬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하나님의 이 교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인생이 너무 경직이 돼요. 뭔 실수를 해도 괜찮아요. 왜 내일 새벽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교정해 주실 거니까 서로 서로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사도바울과 같은 교정해 주시는 어른이 필요해요
빌리보서 3장 18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원수를 행하느니라 오늘 우리의 비극이 이 포스트 모든 이즘의 나쁜 특징 중에 하나가 모든 권위는 다 죽여버리는 거라 그렇게 얘기하대요 하나님조차도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불행이 뭔지 아시죠 교정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렵고 그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교정해 주시는 인간 지도자를 만나기가 어려운 시대예요. 그래서 여러분 늘 우리는 이 말씀이 바르게 행하게도 해주시고 의로 교육하게 되시고 교정하게 해주시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 아브라함이 변화될 수 있었던 두 번째 비결이 뭐냐 깨달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던 아브라함의 귀한 모습입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너무너무 귀한 모습이에요. 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바로 23절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더니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이는데요.
성경이 지금 뭘 강조하는 겁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도 지금 알려주시지만 뭘 강조하는 겁니까 즉시 순종했다는 거예요. 깨달은 즉시 반응했다는 겁니다. 최근에 제가 읽고 읽는 책 중에서요.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라 이 제목의 책이 있는데 제가 이 책을 딱 펼치니까 맨 앞장에서 딱 나폴레옹이 한 말 하나만 가운데 딱 넣어놨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행동할 때가 오면 생각을 멈추고 뛰어 들으라 이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 깨달은 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 얘기고요 그런가 하면은 윌리암 제임스의 말도 인용을 합니다. 들어보세요. 행동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지라도 행동 없는 행복이란 없다.
지금 당장 행동하는 힘 지금 당장 행동하는 힘 저는요 이 글들을 보면서 구약의 두 대조적인 인물이 떠올랐는데 한 사람은 다윗이에요.
그는 그 끔찍한 성적인 범죄를 행하고도 1년 가까이 회개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그에게 잘못된 것들을 지적하실 때 바로 그 자리에서 고꼬라지는 게 다윗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잘 아시는 그 회계를 담고 있는 시편 51편 17절에 보니까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주께서는 겸손하게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을 없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회계 자리로 나가서 즉시 여기에 반해가지고 또 한 인물 비극적인 인물 삼손 삼손이 그 들릴라라는 여자를 통해가지고 끔찍한 일을 당하잖아요. 머리 깎이고 두 눈 뽑히고 그런 절망적인 일을 겪고 나서 그가 하나님 앞에 신음하듯 던지는 기도가 이겁니다.
사사기 16장 28절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그다음에 눈물 날 정도로 처절합니다.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의 사람에게 원수를 단 번에 갖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 기도를 삼손이 이 두 눈 뽑히기 바로 그 직전에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바로 그 전 전에 이 여자의 약함을 인식했을 때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얼마나 좋겠냐고요
여러분 여러분은 다윗 유형입니까 삼손 유형입니까 아무리 잘못한 자리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아직 하나님 기회 주실 때 다윗처럼 주께서는 겸손하게 뉘우침을 회개하는 마음을 없신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즉시 즉시 여러분 오늘 아직 기회 있잖아요. 여러분 아직 기회 있을 때 자기를 돌아보셔야 돼요 저는 외도를 한 번도 안 해봐가지고 그 끊는 게 얼마나 힘들지 잘 모르겠지만요 짐작할 수 있잖아요. 이런저런 얽히고 얽힌 게 많은 게 얼마나 많겠냐고 그러나 여러분 망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아직 기회 있을 때 그런 극단적인 어떤 문제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돌이켜야 될 때 즉시 즉시 오늘 저는 결론을 이렇게 맺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인지하고 계십니까 그 다음 들어보세요. 산의 높이를 재지 말고 산을 만드신 분의 마음을 생각하세요. 그다음은요 너무 와닿아서 제가 방송팀에게 자막으로 좀 띄워달라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폭풍이 얼마나 큰지를 말씀드리지 말고 폭풍에게 여러분의 하나님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세요. 뭘 강조하는지 아시겠죠.
우리가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께 나와가지고 하나님 너무너무 힘듭니다. 무겁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런 기도도 드려야 되지만 뭐라고 말합니까 문제에게 선포하라는 거예요. 니가 날 이렇게 괴롭히지만 문제보다 크신 그 하나님 내가 믿는 하나님 폭풍에게 여러분의 하나님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세요.
저는 그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스가랴 4장 6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수루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그 다음 들어보세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니가 무엇이냐 니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29살 때 이 말씀을 발견하고 제가 30살 때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만든 능력의 말씀이에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인간의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 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내 문제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큰 사나 니가 무엇이냐 니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결론을 오늘 이렇게 맺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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