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찬수 목사님

김병삼 목사님 - 왜 나누며 살아야 하나요(사도행전 2장 42-47절)

728x90
반응형

오늘의 질문

Q.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합니까?

Q. 이런 삶을 살라고 하는 교회의 속내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오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나님의 다스림은 강제적이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2-46절까지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칭송을 받지 않았을테고, 성령의 임재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교회를 보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가, 교회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가를 보면, 우리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이런 본질적인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성령의 임재 가운데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No!

그러나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다스림과 공동체의 의지적인 결단이 있다면 그것은 Yes! 입니다

42절의 '힘쓰니라'를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은혜 받으세요, 은혜 받읍시다!

신앙의 모든 문제가 은혜 받으면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자들이 어떻게 애쓰는지가 빠진다면, 그 은혜가 삶 속에서 어떻게 실제로 나오는지에 관심이 없다면 어려움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42절을 메시지 성경으로 읽는다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공동생활과 공동식사와 기도에 자신들의 삶을 드렸다

자신들의 삶을 드렸다.

NIV 버전에서는 'devoted'

봉사와 헌신에 대해 자신을 드렸다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은혜로 시작하지만, 그 은혜의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나는 이것을 결단했어! 라고 할 때는 다른 것들을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삶을 결단 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 공동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았을까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진정한 기독교는 사도행전을 풀고 있는데, 교회란 무엇이고, 기독교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권위를 잃고,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야 풀어가고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따랐을 때, 43절을 보면,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영어로 하면 everyone 입니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두려워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무서워했다는 것이 아니라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서워하면 피하지만, 경외하면 의식합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더러워서 교회를 피한 것이 아니라, 세상 밖의 사람들이 교회를 의식했다는 말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왜 교회를 의식했을까요?

교회 밖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못할 때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지만, 교회가 세상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때는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말씀을 읽다가 발견한 것은, 공동체에서, 관계 안에서 일어난 일이구나! 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가 분명하게 공동체와 관계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세상들이 교회들을 바라보며 부러워 한 것은 이런 공동체의 끈끈함과 하나됨이었습니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저렇게 나누는 것을 보면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회를 주목하고 의식했다는 것입니다.

(1년 3개월 전에 쓰신 본문)

코로나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모임을 자제하고 개인적으로 식사할 때, 교회는 계속 모이고, 신천지 발 코로나가 계속됨으로 인해서 교회 밖 사람들은 교회를 사회의 악으로 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많은 목회자들과 많은 교회가 고민하고 기도했던 때가 있습니다.

건물에 모이지 못해서, 예배를 못드리는 것이 신앙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했던 공동체의 고백과 신앙 고백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예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섬기는 예배인가,,

아니면 정말 내가 은혜 받기에 급급한 예배였는가..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을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들려 고생하는 여인을 고치신 내용이 나옵니다.

회당장이 병고치는 것을 분내어 뭐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눅 13:15-16)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관점으로 우리의 상황을 보면, 예수님께서 코로나시대에 계신다면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감히 이렇게 이야기해봅니다.

우리의 예배의 행위가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진정으로 예배하는 지를 우리가 보고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합니다. 편의주의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하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면 어떻게 하나.

기도의 불이 꺼지면 어떻게 하나.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우리는 도울 때 내가 돕는다라고 하지만, 성경은 돕는 사람의 중심이 아니라,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임재는 예배를 못드려서 아파하는 것이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끼는 것!

초대교회의 사건을 보니까, 우리가 모여서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그렇게 우리의 눈을 밝게 하는 것입니다.

2020년에 나온 책 중에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책 강추!

스스로 가난해지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지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나눔이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눅 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취임연설입니다.

예수님의 취임연설 후에 늘 대척점에 서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이야기 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의 관점을 바꿔놓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전에는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점.

그들의 필요를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을 깊이 하죠.

우리의 나눔이 자랑을 하고 위안을 갖고 명성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구나가 드러나면 성령의 임재를 받고 있는 교회를 통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것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뉴욕에서 살 때 하루는 나의 일을 생각하며 걷던 중 한 빵집에 있던 여인이 내게 먹을 것을 사달라고 했다. 그녀는 예수님처럼 누일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베이글과 커피를 사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커피는 좋지만 베이글 보다는 달걀 샐러드가 좋다고 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얼마든지요 라고 했다. 속으로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요구가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가던 길을 멈추며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까다롭게 구는 것이 너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뭘 주던 그냥 감사히 먹을 것이지,, 게다가 베이글은 57센트지만 달걀 샐러드는 6달러였다. 그날 그 여인에게 달걀 샐러드를 사주며 혼자 머릿속으로 했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캐비어를 사드릴까요?'라고 빈정거리는 내 목소리도 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그 여인이 베이글이 아니라 달걀 샐러드를 사달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와 잇몸이 다 상해서 베이글과 같이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부드러운 음식만 섭취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비록 그녀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랬지만, 그녀에게 냉담하고 비판적인 마음을 가졌던 것이 하나님께 죄송스러웠다.

내가 그 옛날 벼랑 아래로 예수님을 밀어버리려고 했던 사람들과 별반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그 여인이 아니라 나였는지 모른다.

특권을 가진 사람은 특권이 없는 자들의 삶이 어떤 삶인지 좀처럼 공감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상황은 대게 안타까운 선택을 낳는다.

예수님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도다 말씀하신다.

나누어줄 때 받는 자와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샐러드를 요구한 그 여인 덕분에 내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그 짧은 대화를 통해 내 이와 잇몸은 멀쩡하지만

내 속에 망가지고 상한 구석은 너무나도 많아서 주님의 떡이라는 값비싸고 부드러운 음식과 주님의 잔에 담긴 값비싼 보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중

초대 교회에 구원이 임했습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3천명, 5천명 회개하고 구원 받는 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성령이 나타나는 역사가 구원 받는 사람들의 증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만일 초대교회가 나누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눔'이라고 하는 것이 교회의 유일한 행동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성령의 임재 가운데 우리가 행하는 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나눔'이라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종종 교회에 대해 '세속적인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진정한 기독교는 생명과 나눔과 자기 포기로 충만합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바로 하나님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구별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에 근거합니다.

나눔은 구원 받은 자를 통해 나오는 행위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고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다.

막혔던 담을 헐어버리고 서로 함께 하는 공동체.

구원 받은 자의 명확한 특징은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엡 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오늘 우리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난다면, 우리 안에 허물어야 하는 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쓸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임박한 종말 사상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이단들의 특징이 임박한 종말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공동체와 이단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단은 자기들을 위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것을 쉐어링해서, 아 예수님이 곧 오시니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겠다, 하나님이 오셨을 때의 이 땅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는 자들에게 물질은 욕심이고, 돈에 불과한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얼마나 돈이 많고, 헌금을 하는가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드린 헌금으로 어려운 사람을 구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돈이 많으면 교회를 조롱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물질을 드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우리는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헌금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으로 삶의 패턴이 다른 사람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마음으로 나누지 않았다면, 성령께 쓰임 받는 공동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나누느냐.

성령님께 쓰임 받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쓸 때 세상이 두려워하고 떨며 경외하는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성도의 숫자를 더하여 주시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